전작으로부터 6년. 대망의 4집 앨범 [The Fragrance of Life]를 들고 돌아온 권나무가 2026년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과 ‘최우수 포크 노래상’ 2관왕을 차지했다.
영예로운 시상식 무대 위에서 그는 기쁨과 당혹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선물을 잘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죠. 기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지는 아이들. 제가 딱 그랬습니다”라며 자신을 그런 아이에 비유했다. 그리고 “음악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에게 빚진 게 참 많아요”라며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음악에 대한 깊은 감사와 책임감을 전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편, 그는 초등학교 교단에 서고 아버지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이기도 하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자신답게 표현을 이어가는 것. 그것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그가 시상식에서 전한 메시지는 바로 이번 앨범에 감도는 ‘삶의 향기’ 그 자체다.
수상 이후 다소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다시금 들려주는 음악에 대한 마음과, 공백의 6년 동안 있었던 내면의 갈등, 그리고 ‘생활인이자 창작자’로서 그의 현재 위치에 귀 기울여 보았다.
Interview & Text:AKARI(BUZZY ROOTS)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그리고 기분 좋게 무거운 선물
—— 최우수 포크 음반과 노래을 동시에 수상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시상식 무대에서는 특히 음반 부문 수상에 대한 남다른 소회를 밝히시며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상식에서 직접 상을 받으셨을 때의 심경과,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의 솔직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큰 상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걸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상의 감사함과 기쁨은 곧 제 마음 속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공간에 천천히 가라 앉으며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큰 선물을 받으면 저는 오히려 자주 무거워지는 편입니다. 그것을 보내주신 분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고 좋은 무거움입니다. 한편으로는 큰 상 앞에서 명랑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환하고 크게 웃을 줄도 아는 것도 멋진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의 수상은 한국의 음악가들에게, 특히 저와 같은 독립 창작자, 인디 음악가들에게 큰 격려이자 위로이며, 용기라 생각합니다.
—— 데뷔 10년을 넘기며, 한국대중음악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베테랑’으로 평가받고 계신데요. 현재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세요?
음악가로서 갈 길은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갈 길’이라는 것의 의미는 음악가로서의 의무감이나 책무,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날마다 부딪치고 표류하며 어떤 곳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곧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숙명 같은 것들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제게도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우리는 결국 어디론가 향하는 과정 속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요.
물론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자신의 이야기 혹은 자기 내면의 무언가를 길어 올려 창작하는 창작자가 자신의 삶 이전에 작품을 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작자 자신의 삶이 어디론가 향해 움직이고 있다면 음악도 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삶은, 그리고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식으로든 작품을 통해 드러나거나 풍겨져 나오거나 작품에 묻어나거나 베어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저의 음악적 위치라는 것은 시대 속에 놓여 함께 흐르고 있는 제 개인의 삶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음악가로서 제 음악이 어떤 위치에 놓이고 호명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의 삶이 지금 어디쯤 와있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감각하는 것은 늘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음악가로서 정말로 데뷔 초에 비해 작품 활동이나 라이브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 온것이 맞다면 그것은 아마 제 삶이 그러한 방향으로 그렇게 나쁘지는 않게 흘러온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늘 감사한 위로와 위안을 얻습니다.
아직까지는 가끔씩 맘이 부풀기도 해
반짝반짝이던 날이
아직 그대로 사랑이 시작되는 날이
정말 붙잡아볼까 멈춰서 선
꿈처럼 가벼운 웃음만
—— Track 01「Unknowingly, So Did I(그렇게, 나도 모르게)」
—— 이전에 BUZZY ROOTS에 출연해 주셨던 것은 2019년 일본 투어 당시였습니다. 3집 앨범 [새로운 날(New Day)](2019)를 들고 진행한 투어였고, 첫 해외 공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투어가 끝난 뒤 “なるほど、世界は繋がってるんだ!(나루호도, 세카이와 츠나갓테 룬다로!)”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요. 지금 돌아보았을 때, 그때의 경험이나 깨달음이 이후의 음악 활동이나 일상적인 사고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시 공연장을 찾아주셨던 일본의 관객분들과 함께 투어를 꾸렸던 동료들, 일본에서 공연을 열 수 있게 되기까지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께 실례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도 직접 밝힌 적이 없었던 이야기입니다만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조금은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지난 2019년 일본 투어 이후 제 자신에 대해 되돌아본 시간이 꽤 깊고 길었습니다. 첫 해외 투어라는 소중하고 감사한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당시 저는 많은 것들에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저는 제가 지쳐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준비과정에서 최선의 정성을 다하지 못했고, 큰 이벤트들을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두루 돌보지 못했습니다. 음악가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공연은 음악과 음악가, 그리고 베뉴에 대한 신뢰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충분히 돌려드리지 못하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투어 내내 한 순간도 만족스러운 라이브를 하지 못했습니다. 연주 하는 내내 멤버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고 제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되돌아보면 그건 모두 저의 문제였습니다. 특히 투어에는 가족들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만 제가 투어 내내 너무 날카롭고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모두에게 어떻게 남았을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충분히 제대로 다시 묻지 못했습니다. 모두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이 흘렀고 여러 가지 삶의 변화를 겪으며 모든 것들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다시금 충만한 충만한 라이브들을 이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마음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낯선 한국의 음악가의 공연을 보러 공연장을 찾아주신 일본의 관객분들과 공연을 열 수 있도록 해주신 공연장들, 그리고 공연을 여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중간에서 애써주신 분들, 무엇보다 연주를 함께 해준 동료들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모든 일들은 그 자체로 개인으로서의 저에겐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조금은 더 나은 모습과 태도로 지금껏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9년에는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생각합니다. 음악가로서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음악이 갖는 보편성, 보편적 감동이나 감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겠습니다. 만약 일본의 관객분들을 다시 뵙게 된다면 그때 얻었던 마음들을 조금 더 정성을 다해 좋은 라이브로 되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때 진정으로 관객분들과 음악적으로 연결된 순간을 느끼고 싶습니다. 다시 기회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BUZZY ROOTS에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창작의 샘이 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생활’과 ‘표현’ 사이에서
—— 그로부터 약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생활이나 일상, 창작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권나무님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느 덧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다사 다난한 일들을 지나오며 가족이 넷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생활인으로서 일하는 여느 가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창작자로서 홀로 깊고 충분한 창작의 과정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가끔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전까지의 제가 창작하고 싶을 때 창작하고 멈추고 싶을 때에는 멈추면 되는 삶을 살았다면, 가정을 꾸린 이후에는 ‘할 수 있을 때 잘 해내는 것’, ‘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작업 방식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창작에 익숙해지면서 작업 중인 환경의 모니터 상황도 라이브 상황 속인 것처럼 세팅해서 작업하기도 했고, 데모 음원을 작업하는 프로세스를 제 나름대로 조금 더 체계화 해보려는 노력들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창작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틈틈이 곡들은 계속 썼지만 마음에 드는 곡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그때의 제가 놓여 있는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에서 출발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도망치고 싶었거나 외면하고 싶은 마음들이 표상된 형태로 드러 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쁘고 고된 일상 속에서 어떤 감각이나 정서 같은 것들이 자꾸만 건조하게 메말라 가는 것 같다고 느낄수록 창작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창작자로서의 샘물이 모두 말라버린 것은 아닐지 두려웠던 때도 있었고 가슴이 답답한 날들이 길었습니다. 물론 삶과 생활 자체가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작 창작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 요인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저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해와 실천 사이의 그 넓은 강을 건너는 일은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영영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게 되더라도 결코 조급하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던 언젠가는 결국 내가 진정 원하는 이야기를 원하는 곡으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 마음 한켠 일종의 낙관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한 가지 중요하게 되짚어 볼 부분이 있다면 2019년 정규 3집을 발매한 이후 이번 정규 4집을 발매하기 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동안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공간들에서 초대를 해주셔서 거의 매주 크고 작은 라이브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연주자분들과의 호흡도 끊임 없이 이어오며 발전해 나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음악가로서의 감각이나 태도를 잃지 않고 지속해올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정말 감사하고 기적같은 일입니다.
가꾸는 마음 떠나려는 마음
떠나기 위해 가꾸는 마음
떠나려는 마음 가꾸는 마음
가꾸기 위해 떠나려는 마음
—— Track 05「Two Hearts(두 마음)」
잠든 너를 보고 있으면
세상 제일 사랑한다고
너의 등을 쓸어내리며
모두 내가 가져간다고
—— Track 08「Watching You Sleep(잠든 너를 보고 있으면)」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일상, 그리고 인생의 ‘사이’에 놓인 자신
—— 지금도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일을 계속하고 계신지요? 본업과 창작, 라이브 활동, 그리고 가정까지 여러 역할을 균형 있게 이어가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실도 늘 라이브(LIVE) 그 자체입니다. 생생하죠. 교사로서의 삶, 교실에서의 삶도 유니버스와 카오스, 카오스와 유니버스를 교차하며 그 역시 어떤 지점을 향해 순환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겠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균형에 관해 인식하게 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내가 어떤 것에 ‘치우쳐’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치우친 상태’, ‘치우쳐 보이는 상태’를 조금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말해보자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거나 몰입하고 있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균형은 마침내 도달해야하는 고정된 상태라기보다는 매 순간 흘러가는 우리 삶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그 상태나 위상이 변화하고 조정되고 생성되어 나가는, 언어로서 포착해 간신히 기록해둘 수 있을 정도의 찰나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그나마 알맞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물론, 균형 그 자체를 목적이나 지향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균형은 삶의 결과로서 ‘말해지는 것’이거나 ‘불리우는 것’이거나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뒤따르는 것 말입니다.
제 노랫말을 조금만 빌어 말해보자면, 기억과 기록의 시차, 이해와 실천의 시차, 파종과 수확의 시차, 비관과 낙관의 시차…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는 그 ‘사이’ 어떤 지점에 놓여있으면서 동시에 그곳을, 그때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곳, 그때의 ‘사이’에 있는 나의 모습이 진실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주장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조금 과도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부턴가 흘러왔고, 지금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균형에 대한 생각이나 이야기가 지금 내가 놓인 지점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의 흐름이나 시대 사회적 흐름 속에서 살아감과 동시에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우리 모두에게 자신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치에 대한 감각 같은 것이죠. 그러나 나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도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거울 삼아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위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내가 인식하는 나 자신과 타인이 인식하는 나, 그 ‘사이’ 어디쯤에 나라는 사람이 놓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실이라 말할 수 있게되는 것은 결국 그것, ‘사이’에 대한 감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난 이제 외롭지 않네
잃어버린 게 외로움이라서
파종과 수확의 시차가
만드는 기쁨의 소진을 좇네
—— Track 04「Too Much Lost to Weep(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
>> To be continued in【Part 2】